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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밤의 해변에서 혼자 (On the Beach at Night Alone , 2016)


홍상수 영화를 본 지 꽤 되었다.

'해변의 여인'부터 시작해서 그 이후의 영화들을 봤고, 데뷔작을 보고 감탄했고,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내게 홍상수 3기 같은 느낌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태껏 본 홍상수 작품 중 가장 실망스러웠다.

홍상수 영화를 보는 재미가 이 영화에서는 찾기 힘들다.

일단 그의 방어적인 태도, 변명에 가까운 말들로 인해 생긴 작위성이 그 이유라고 생각된다.


특히 '시간'에 대한 은유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을 노골적으로 쓴 부분은 잉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과 너무 흡사했다.

마치 시간 위를 부유하듯 사는 여인이 결국 다시 시간으로 복귀해서 느끼는 성장통.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되는 홍상수의 영화가 처음이고, 그래서 별로였다.

홍상수는 요약되지 않지만 우리 일상에서 접근가능하기에 매력적이었는데 그 매력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가 끊임없이 반복하던 '우연'이 이 영화에서는 유독 약하다.

사랑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에서의 대사들은 왜 그리 진부하게 느껴지는 걸까.

그는 분명 보편의 대사는 특별하게 만드는 것에 탁월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못하다. 


김민희는 압도적이다.

다만 그녀 주변 인물들이 그녀를 위해 도구적으로 쓰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떤 느낌이냐면 김민희 이외에 다른 인물들도 김민희가 없었다면 충분히 그 장면들에서 생동감을 얻고 전진가능했을 것 같은데, 김민희가 너무 압도적으로 매력적인 인물로 등장해버린다.


홍상수는 선택한다.

김민희를 전진시키고 나머지는 잠시 멈춰두기로.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자주인공을 카메라에 담는 그 방식에서 오히려 그가 사랑에 대해 정의하는 방식을 엿본 느낌이다.

그는 세상을 멈추고 그녀만을 잡기로 한다.

영화에서 오가는 대사들이 아니라 카메라를 통해 감독의 존재를 인지하는 순간 그 영화는 무너진다.

난 홍상수 영화를 보면서 항상 나 자신을 생각했으나, 이번 영화에서는 홍상수가 렌즈를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너무 크게 그려졌다.

몰입에 실패했고, 내게 이 영화는 홍상수답지 못한, 연출자의 메세지가 노골적으로 보여서 싱거운 영화로 보였다.


관객을 프레임 안으로 끌어들여서 난처하게 만들던 홍상수가, 명확히 감독으로 드러나버려서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느낌이다.

과연 그는 다시 돌아올 것인가.

그는 김민희라는 배우를 빛내기 위해 이 영화에서 나머지를 버렸다.

그녀에게 무대를 주고, 무대 뒤에 숨어있어야할 자신이 그녀를 꾸며주느라 존재를 들켜버렸다.

영화적으로 실패했고, 김민희를 빛내주는데에는 성공했다.

난 이러한 시도에 대해 박수 쳐줄 수 없다.


그의 최근작 말고 초기작들을 다시 봐야겠다고 느꼈다.

어쩌면 계속해서 그래야할지도 모른다.

그의 데뷔작에서 목격한 그의 끝을, 어쩌면 조금 더 빨리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이제 홍상수답지 못한 홍상수의 시대에 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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