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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이야기

바닥

 

 

 

 

 

1. 바닥

 

서로 바닥을 친 관계라면, 행복을 빌어줄 수 있다.

바닥을 쳤다는 것은 애증의 관계라는 뜻이기도 하고, 미안함이 함께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미련조차 없을 만큼 바닥을 쳐버렸기에 얼마든지 행복을 빌어줄 수 있다.

행복을 빌어주는 것을 관계의 마지막으로 하는 것은 좋은 합리화 도구이기도 하다.

 

미련이 남은 관계에 대해서는 절대로 행복을 빌지 않는다.

바닥을 치지 못한, 나의 애정이 남아있어서 미련으로 끝이 난 관계에 대해서 불행을 바랐으면 바라지, 결코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아닌 누군가로 인해 행복해하는 모습을 바라는 것은 쿨한 게 아니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소유욕으로 인해 눈이 멀게 되는 것이 미련의 가장 큰 증거일 것이다.

 

이규호가 가사를 쓴, 윤종신의 '몰린'이라는 곡이 자주 떠오른다.

누군가의 불행을 바라는 와중에, 어느새 나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행복해진다.

불행해지라고 한동안 부여잡고 원망하던 이들은 내 기억의 한켠으로 몰린다.

 

내 기억의 한편,에 불행으로 끝나기를 바란 이들이 쌓여간다.

행복을 다시 빌어주려고 마치 의식을 치루듯 그들을 부르려고 해도, 불행으로 결론지은 그들이 이젠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어느새 난 그들을 잊은 것이다.

세상 모든 원망을 가지고 불행을 바랐던, 무척이나 소유하고 싶었던 그들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그들에게 불행을 빈다, 라는 다잉메세지를 일방적으로 붙여버린 채 말이다.

 

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몰려있을 것이다.

내가 누군지도 잊어버리고, 한 때 좋았지만 이젠 불행을 바라는 그런 사람 중 한 명으로.

 

과거의 인연들이 엉켜서, 불행해지기를 바란다는 결론 하나만 가지고 서로 엉켜서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있다.

저 덩어리의 행복을 바라기 위해서는 어떤 주술이 필요할까.

저들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라는, 책임감 없는 합리화 말고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 것일까.

 

결국 구석으로 몰릴 것 같은 관계는 아예 시작조차 하고 싶지 않다.

처음부터 끝을 상상하고 시작하는 관계란 얼마나 슬픈가.

그 누구도 불행한 끝을 예측하고 관계를 시작하진 않을 것이다.

 

결국 난 또 다시 세상 모든 행복을 다 가진듯 기대를 품고 누군가에게 다가갈 것이고,

누군가에 대해 불행하라고 저주할 것이고, 확신 없는 관계 앞에 갈팡질팡해할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관계가 재밌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은 지나버린 것 같다.

그렇게 말하기에는 이미 내 마음 한 켠에 너무 많은 불행들이 쌓여버렸다.

그 풍경을 보고도, 나는 미련 남은 관계에 대해 소리칠 것이다.

제발, 불행해지라고.

 

 

 

 

2. 유보

 

- 수상한 커튼 너를 사랑해

- 안녕하신가영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

- 선우정아 봄처녀

- 야광토끼 너여야

 

4개의 글은 저작권신고가 들어와서 지웠다.

가사와 앨범쟈켓이미지 때문일까.

직접 음악 파일을 올린 것은 아닌데.

 

조금이라도 더 알려졌으면 해서 올린 글인데,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었나.

조심스러운 부분이기에, 잘 알아봐야겠다.

 

 

 

 

3. 기록

 

기록한다는 것은 조수간만처럼 끊임없이 침식해 들어오는 인생의 무의미에 맞서는 일이다 - 김영하

 

여전히 매일 일기를 쓴다.

다시 읽지도 않을 일기를 쓰는 이유는, 그래야만 쓸모없어 보이는 내 인생이 의미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의 하루가 흘러가고 있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이기도 하고.

 

시간이 멈춰버린 사람의 일기가 궁금하다.

 

 

 

 

4. 창문

 

창문을 닫을 수 있는 계절이 좋다.

문을 닫는 것이 자연스러운 계절이 좋다.

 

어느새 여름이다.

창문을 열어야하는 계절이 와버렸다.

창문이 열릴수록 나의 사생활은 그에 비례하게 닫히는 느낌이다.

 

성악 공부한다는 옆집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중국인부부의 싸움 소리로 주말의 아침을 시작하고,

멜론차트보다도 빠르게 최신가요를 불러주는 아랫층 소년의 노래가 새벽을 두드릴 것이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원치 않는 소리들이 들어올 때,

그들과 단숨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고. 그것이 정겹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고 그저 불쾌하다.

나의 방, 내가 나다워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에서 원치 않는 소리를 예고도 없이 듣게 되는 것이 내게는 전혀 유쾌하지 못한 일이다.

 

이제 여름이 막 자리잡기 시작했지만, 난 벌써부터 가디건을 걸칠 수 있는 날씨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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