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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 2016)



서부극이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서부극이 공간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결국 공간에 대해 목격하는 것인데, 아무리 프로덕트 디자인을 해도 도달 못할 분위기를 서부극은 주곤 한다.

사막의 황량함은 우리에게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정서를 준다.


가장 많이 떠오른 영화는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였다.

다만 '로스트 인 더스트'는 좀 더 자본에 대해 짙게 말하는 영화다.


데이빗맥킨지의 연출은 그가 서부극이라는 배경과 자본이라는 메시지를 적절하게 섞어뒀고, '시카리오'에서 유려하게 날카로움을 보여주던 테일러쉐리던의 영리한 각본도 여전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카데미에서 '로스트 인 더스트'가 무관으로 끝났다는 게 아쉽다.


은행을 털고, 그 돈을 카지노에서 바꾸고, 그 돈을 은행에 넣고, 그 돈을 담당하는 이들이 있고, 그 돈을 쫓는 경찰이 있다.

이들 중에 그 누구도 자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자본의 흐름에 대해 노골적으로 말한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이런 자본의 흐름에 자유로운 영화란 단 한편도 존재할 수 없다.

자본주의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영화는 결국 자본의 논리에서 어떤 방식으로도 자유로울 수 없다.


가장 변방이고 자본보다는 황량함이 먼저 반겨주는 사막에까지 자본은 침투한다.

마치 원주민들의 땅을 차지하고 필요 이상의 자본을 증식해나가던 선조들처럼 말이다.


제프브리지스를 보면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토미리존스가 떠올랐다.

무기력했던 후자와 달리 전자는 오히려 '그랜토리노'의 클린튼이스트우드를 떠올리게 할만큼 진취적이다.

그는 자신의 파트너인 원주민 출신인 이를 놀리지만 동료애를 갖고 있다.

그 둘 사이에는 토착민과 이주민이라는 계급적 한계가 있지만 그들은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다.


경찰과 달리 유일하게 이 사건의 용의자로 형제를 지목하는 것이 제프브리지스인 이유도, 형제가 서로 전과자와 평범한 노동자라는 계급적 한계가 있는 둘이 연대해야 이런 범죄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유추하기 때문이다.


가장 뇌리에 깊게 남은 장면은 식당에서 용의자를 찾아온 두 레인저에게, 마을의 오래된 이들이 마치 현인처럼 저렇게 은행을 털면서 사는 시대는 지났다고 지적하는 장면이다.

텍사스의 무기력함과 함께, 오히려 그런 무기력함을 약점으로 생각하고 활개를 치는 용의자들 사이에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결국 그들이 받을 연급조차도, 자신들이 입금한 은행에서 털린 돈으로 누군가 넣은 돈으로 영위된다.

어차피 은행에 고정된 자금은 일정하지만 그 돈의 소유주만 바뀐다.

마치 토착민의 자원을 자신들의 소유로 바꾸고 그들을 지배하는 이주민처럼 말이다.

텍사스의 황량함은 그대로이지만 그 주인만 바뀌고 텍사스의 사막은 이 모든 것을 목격한다.

즉, 이 영화의 가장 거대한 목격자는 택사스 그 자체이다.


벤포스터는 '챔피언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신의 욕망을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이뤄내는 역할에 있어서 탁월하다고 생각했고, '로스트 인 더스트'에서도 자칫 과잉될 수 있는 자신의 연기를 능수능란하게 톤을 조절해서 보여준다.

크리스파인은 자신의 마스터피스를 만들었다.

텍사스의 무기력함을 제프브리지스가 보여준다면,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영화적인 욕망은 전적으로 크리스파인의 눈을 통해서 드러난다.


그들이 아무리 차를 버리고, 돈을 카지노칩으로 세탁을 하고, 형이 모든 혐의를 가져가도 제프브리즈스는 마지막에 크리스파인을 찾아온다.

제프브리지스는 즉 텍사스 그 자체이다.

이 황량한 땅에서 결국 살아남은, 이 지역의 생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

퇴직을 앞두지만 가장 큰 열정을 가진 사람, 마치 무기력한 이 사막에서 은행강도를 꿈꾸는 크리스파인처럼 말이다.

결국 그들은 정반대의 지점에 있지만 황량한 사막에서 유일하게 꿈을 꾸는 이들이다.


이 영화에서 누구를 중심으로 잡아도 이야기가 끝없이 증식한다.

배경과 캐릭터가 탁월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과잉할 수 있을 대목이 많았음에도 자제하는 감독의 역량에 감탄하게 된다.


사막 한 가운데에서 거대한 꿈을 꾼 기분이다.

존포드나 존웨인의 서부극은 내게 낯설다.

현시대에서 서부극을 그들에게서부터 배운 젊은이들은 많지 않다.

그런 내게 결국 서부극은 이런 현대극을 통해서 익히고 거슬러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결국 존포드와 존웨인을 만났을 때 나는 코엔형제나 데이빗맥킨지를 떠올릴 것이다.


서부극은 계속 전진할 것이다, 

마치 '로스트 인 더스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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