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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돼지의 왕 (The King of Pigs, 2011)



부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영화, 좋아한다,
자극 많이 받는다, 행복보다는 불행을 볼 때.

섬뜩한 영화이다.
내가 지금 이 좌석에서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낯설어지는 장면들이 있을 만큼.
이 영화의 에너지는 거의 스크린을 뚫고 나와서 가슴이 덜컹할 때가 많다.

2009년도에 극장에서 봤던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을 봤을 때와 비슷하다.
방관자들이 제일 나쁘게 느껴졌고, 에너지가 넘치고, 영리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개들을 보면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떠오르고, 철이를 보면서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이 떠오르고,
정서적으로는 이영광의 시 '이따위 것'이 떠올랐다.

결말이 정말 환상적이다.
왕, 따위는 없다.
아니 감히 우리는 왕을 볼 수 없는 '따위의 것'이다.

영화 속 가장 무서운 장면은 폭력을 지켜보고 있는, 아니 방관하고 있는 돼지 머리를 하고 있는 반 아이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 아이들이 정말 괴물이다.

이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낸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돼지의 왕'이 말하는 폭력을 실사로 풀어내면 그 잔인함을 눈 뜨고 보기 힘들 것이다.

아역들의 성우를 여배우들에게 맡긴 것도 좋았다.
사춘기 시절의 아이들의 연약함이 느껴졌다.

'파수꾼'이 더 냉정한 시선으로 독기를 품으면 이 영화가 되지 않을까.
연상호 감독의 단편인 '사랑은 단백질'에서 보여준 그로테스크함은 장편에서도 이어진다.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은 정말 모두 경악할 만한 엔딩을 보여줄 예정이라는데 지금도 '돼지의 왕'의 엔딩의 충격에서 헤어나오기 힘든데 어떤 엔딩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자신이 말하고자하는 것을 뚝심있게 밀고 나가는 영화여서 좋았다.
괴물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상암 시네마테크에게 너무 고맙다.
이렇게 좋은 영화를 다시 상영해주어서.
스크린으로 이 엄청난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