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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이야기

징후들

 

 

 

 

 

1. 보고 싶고 궁금해

 

'보고싶다'와 '궁금하다'가 동의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알고보니 둘은 전혀 다른 성질의 말이었다.

내가 보고싶어했던 것과 궁금해했던 것은 꽤나 많이 달랐다.

 

 

 

2. 나

 

'어떤 사람인가요?'

 

제품설명서처럼 나의 속성에 대해 설명해야하는 순간이 오면 당황스럽다.

정의되는 것도 싫고, 시시각각 바뀔 나 자신을 가둬놓는 것도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사람이지'라고 믿고 있던 몇 가지가 있다.

그런데, 틀렸다.

전혀 아니었다.

틀렸다는 것을 알고도 아닌 척 하고 말하고 다녔다.

 

다자이오사무의 '인간실격'에 나오는 요조처럼 익살을 부리면서 사느라 진짜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사는게 아닌가 싶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당황스럽다.

진심인척 하는 것이 진심인 사람이면 어쩌지.

 

 

 

3. 새벽

 

내게 새벽은 견디는 것이고 옳지 못한 것이다.

규칙적인 생활을 지향하고, 아침형 인간을 지향한다.

늦잠을 자서 오전없이 오후부터 시작되는 하루는 내게 최악의 출발이다.

 

새벽을 즐기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

고3 때 라디오 들으면서 수학문제를 풀던 새벽이 내가 즐겼던 유일한 새벽일지도 모르겠다.

그때도 주연은 수학이나 라디오였지, 새벽은 어디까지나 조연이었다.

그저 배경일뿐.

 

새벽을 온전히 즐긴다는 것은 무엇일까.

밤의 감수성에 무엇인가를 맡긴다는 것이 내게는 무척이나 위태롭게 느껴진다.

다음날 찢어버릴 편지나 금세 숨기게 될 마음 같은 것들.

 

 

 

4. 눈

 

먼저 당신에게 사진기를 줄거야.

당신이 삶에서 보는 것들을 찍는거야.

나를 의식하지 말고, 주변 의식 말고 당신이 자연스럽게 찍은 것들을 보여줘.

아니, 정정할게.

의식하는 당신이 자연스러운 당신이라면 그렇게 찍어도 돼.

 

사진기가 아니라 눈이 필요한거구나.

당신의 눈이.

내가 보고싶은 건, 당신의 눈이구나.

당신의 눈이 담은 것들.

당신의 입술이 뱉는 언어들로는 온전히 담을 수 없는 것이 담긴 눈.

이왕이면 나를 만나기 전에 담아둔 것들보다는 나를 알게 된 이후로 당신이 바라보게 된 것들.

 

난 나로 인해 변하는 당신을 꿈 꿔.

내가 당신에게 미동조차 줄 수 없는 존재라면, 그것에 대한 슬픔은 굳이 내 눈을 꺼내 보여주지 않아도 언어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막상 주면 감당하지도 못할 눈이면서도, 왜 그렇게 눈이 궁금한걸까.

 

당신의 일상을 흔들 자신은 없어.

아니, 막상 그렇게 되면 겁이 날거야.

그저 달콤한 미동 정도를 당신에게 주고 싶어.

양보에 능숙한척 하는 내가 대놓고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어쩌면 최소한의 욕심이야.

 

그러니까 눈이 궁금하다고.

 

 

 

5. 꼬리

 

예전에 한 친구가 말했다.

넌 꼬리가 있으면 큰일났을 거라고.

지금도 이렇게 사람 좋으면 티가 나는데, 꼬리까지 있었으면 어쩔뻔 했냐고.

 

영화 '사토라레'처럼 나 빼고는 다 안다.

내가 온몸을 꼬리삼아 흔들고 있음을.

때로는 작은 미동, 어느 때는 휘청휘청.

 

꼬리를 흔드는 개는 칭찬을 받지만, 온몸이 꼬리처럼 흔들리는 사람은 저지당한다.

그렇게 나는 점점 숨기는 사람이 되었다.

가까워지면 다들 묻는다.

왜 이렇게 많은 걸 숨겨. 좀 마음을 열어줬으면 좋겠어.

 

그 말에 마음을 열고 꼬리를 꺼낸다.

그들은 자신이 방금 한 말이 진심이 아니라 호기심 정도였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싶었는지 도망간다.

그렇게 난 다시 침묵하고 숨긴다.

 

진심인척 하는게 진심이 사람입니다.

진심으로 다가가면 뒷걸음칠거라는건 나처럼 우둔한 사람도 알 수 있어요.

그렇게 나는 다시 꼬리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래, 개가 되었어야해.

차이밍량의 '떠돌이개'를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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