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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논픽션 다이어리 (Non-fiction Diary , 2013)

 

이렇게 놀라운 통찰력을 가진 다큐멘터리는 오랜만이다.

한국근현대사를 보여줄 때 '그때 그 사람들', '박하사탕', '살인의 추억' 등과 함께 보여준다면 한국근현대사의 주요키워드가 손에 잡히지 않을까 싶을만큼 인상적이다.

 

영화는 지존파 사건으로 시작된다.

사람을 납치하고 돈을 요구하고, 경찰에 잡히자 더 많은 사람을 죽이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던 지존파 사건 말이다.

그들의 악행은 악마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영화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개인의 문제는 대부분 사회 시스템 속에서 만들어진다.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시스템 속에 개인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현미경으로 하나의 사건을 깊이 있게 바라본 뒤에, 그 관찰에서 얻은 통찰을 통해 사회시스템 전체를 말한다.

한 시대에 일어난 사건은, 그 시대를 대변한다.

각 시대별로 언제나 납치, 살인, 건물붕괴 등의 사건이 일어난다.

이것은 표면적으로 동일해보일지 모르나, 그 시대를 관통하는 무엇인가를 함축하고 있다.

 

지존파 사건의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삼풍백화점 사건의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그런데 두 사건을 사람들이 기억하는 방식도, 처벌받은 수위도 다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죽는다.

살인을 당해서 죽기도 하고, 생계를 보장받지 못해 투쟁하다 죽기도 한다.

칼로 찌르는 것만이 살인이 아니다.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자본의 논리 또한 살인이다.

 

어떤 사건이 터지는 순간, 우리는 개인에게 집중하는 버릇이 있다.

사건의 책임자를 탓하고, 개인의 배경에 집중한다.

지긋지긋하다.

한 명에게 모든 죄를 몰아주고 그를 죽이면 끝났다고 생각하는 방식.

그렇게 시스템은 고쳐지지 않고 개인들은 지속적으로 죽어간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개인들이 되고, 잠재적 범죄자의 가능성을 품고 살게 된다.

 

지존파 사건 범죄자 중 한 명은 어릴 적 가정형편 때문에 미술도구를 살 수 없어서 미술숙제를 못 해서 혼난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 친구의 숙제를 빼앗은 뒤 칭찬을 받았고, 그 순간 세상을 사는 법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가장 약자에 대해 배려하는 시스템을 갖춘 세상이었다면, 지존파 사건은 지워졌을지도 모른다.

 

며칠 전 '내부자들'의 확장판을 봤다.

거대자본과 권력을 가진 이들은 괴물이라 싸울수록 더 강해질 뿐이니, 싸우기보다 붙어서 가는 수밖에 없다는 대사가 나온다.

우린 그 말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더럽하고 욕을 하는 시스템에 기생하듯 붙어서 살고 있다.

그렇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시스템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의 시스템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살기 위한 몸부림이 무엇일지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나는 내일의 출근을 위해 또 다시 준비를 하고, 내가 취하는 자본의 몸짓이 누군가에게 생명의 위협이 되는 나비효과가 될 수 있음을, 내 이익을 위해 타인의 아픔에 눈감는 것에 익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것이 언제부터 당연한 것이 되었을까.

숨 쉬는 모든 순간이 죄처럼 느껴진다.

합리화와 정당화 대신 순교자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지 생각하다 탄생의 순간을 떠올리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