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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거인 (Set Me Free , 2014)


'여교사'를 먼저 보고 몇 달이 지난 뒤에 '거인'을 봤다.

'거인'을 먼저 봤다면 '여교사'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컸겠다 싶을 만큼, '거인'은 좋은 영화다.


한 소년이 있다.

가정으로부터 도망나왔지만, 도망칠 수 밖에 없을 만큼 절망적인 가정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나아져서 돌아갈 보금자리일 것이라고 희망을 건다.

나쁜 것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충고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 희망조차 없다면 지금의 전진을 버텨나가기 힘드니까.


소년의 몸은 점점 커진다.

작았던 소년에게 갔던 관심이나 보호는 점점 줄어든다.

저 소년은 이제 몸이 큰 거인이 되었다.

거인은 보호하지 않아도 된다.

한 번도 보호받지 못했던 소년은 보호받지 못하는 소년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거인이 된다.

우는 소년에서 우는 거인이 되었다.


소년은 나쁜 짓을 저지르곤 한다.

누구도 지켜주지 않았고,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었으니까.

우리가 합의한 규칙에 의하면 그는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처럼 보호받지 못한 이를 위한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왜 다 침묵하는 것인가.

당신은 진짜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거인이 되어본 적 없는 것이다.

울타리 안에서 계속해서 보호 받으며, 몸은 커져도 사랑받는 자식으로 자라왔을 확률이 높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언젠간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싶다.

나 하나 못 지키는 삶이지만, 훗날 내가 나를 지키는 순간이 오면 나도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날까지 필요한 최소한의 보호는 누가 해줄 수 있을까.


거인이 움직인다.

그가 사랑받았었는지, 나쁜 짓을 하고 있는지, 보호받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어떤 시간을 거쳐서 성장해버렸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뿐.


나는 이 소년을 본 적 있다.

사랑받지 못했다고, 보호받지 못했다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나 스스로 확정 짓고 포기하고 침묵하던 그 순간에 나는 이 소년을, 저 거인을 본 적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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