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일, 왕빙

아로새기다 2015.09.29 15:34

 

 

 

또 한 번의 부산국제영화제가 다가왔다.

올해도 가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2011년의 부산국제영화제가 내 생애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부정해본다.

그때가 마지막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다는 정성일 감독의 신작 소식을 듣게 되었다.

왕빙 감독의 촬영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왕빙 감독의 영화만큼이나 긴 러닝타임을 자랑한다.

 

왕빙 감독의 '철서구' 시리즈를 비롯해서 그의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다.

철서구 시리즈의 러닝타임으니 합치면 9시간에 이른다.

왕빙 감독의 다른 작품들의 러닝타임도 대부분 3~4시간이다.

 

부끄럽게도 내겐 아직 그 정도의 영화적 지구력이 없다.

지구력을 기르고, 그 가치를 또렷하게 목격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면 그때 보고 싶다.

'철서구'는 사라져가는 한 도시에 대한 기록이다.

한 도시에 대한 기록으로 9시간이라면 무척이나 짧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내게 영화적으로 엄청난 감흥이 없을지 모르지만, 내게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정성일 감독의 영화평을 좋아하고, 그의 트위터에서 좋은 글을 발견하곤 한다.

타인을 신경 쓰느라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볼 시간이 별로 없었음을 깨달았을 때, 왕빙에 대한 글을 만났다.

이젠 저 글에 적힌 말에 대한 깊은 공감을 넘어서, 직접 저 감정을 느끼고 싶다.

 

나의 세상이 저 사람의 세상과 의미있게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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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남자가 내게 가르쳐준 것

아로새기다 2012.11.18 16:07


민병헌, MG199, 2010


돌이켜 보면, 삶의 크고 작은 성취들은 모두 좋아하는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었다. 무엇 하나 잔소리 안 하는 부모와 자랐으니 대신 연애공부의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 것이다. 그냥 에너지가 펄펄 끓었다.

열여덟, 대학 이학년 때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서른 여덟 살의 한 외국대학 선생을 만났다. 혼란스러운 대학 분위기에서 우왕좌왕하는 또래 남자 대학생들을 보다, 모든 생각들이 정돈 된 남자를 알게 되는 것은 안도되는 일이었다. 며칠을 우리는 만나고 또 만났다. 그는 두 배의 시간을 살아낸 남자였지만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나에 대해 물었고 내가 주섬주섬 대답을 하면 그 대답 속에서 가장 신중한 언어로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해주었다. 그것은 내가 무척 소중히 다뤄지고 있다는 호사스러운 첫경험이었다. 귀국 후에도 서로에게 긴 편지를 쓰고 또 썼다.

일년 후, 그가 자신이 적을 둔 대학의 대학원 입학원서를 내게 보내왔을 때, 나는 잔 한숨을 몰아쉬었다. 안 그러면 가슴이 빨갛게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난 그 힘으로, 단지 그가 보고 싶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어떤 단체의 장학생으로 뽑혀 여름방학 내내 일본에 체류할 수 있는 기회를 거머쥐었다. 그렇게 이제 갓 마흔이 된 그와 이년 만에 한 러시아 식당에서 재회했고 그는 테이블 너머로 쉴새 없이 내 머리칼을 쓰다듬고 있었다. 나는 착한 모범생마냥 그간 얼마나 치밀하게 대학원 준비를 해왔는지 그에게 보고했고 내 말이 끝나자 흐뭇한 미소의 그가 잠시 표정을 굳히면서 자기는 곧 결혼하게 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시야가 먹색으로 바뀌는 순간 나는 알았다. 난 사실 공부에 아무 관심없고 오로지 그가 유학의 이유였음을. 오기로 일본유학길에 오르겠지만 도중에 학업을 그만 두리라는 것을. 훗날 그 모든 것은 그렇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정확히 그 연애 때부터 나는 말끔히 체념하는 태도를 배웠다. 다시 말해 이별하면서 상대를 저주하거나 원망하거나 배신했다고 공격하지 않았다. 며칠 극심하게 괴로워하고 슬퍼하긴 해도 이내 그리움으로 그 상대를 마음 속에 남겼다. 그리고선 이전보다 더 열심히 일하거나 공부하고, 더 열심히 다른 연애를 시작했다. 나를 버리고 간 그 남자에게 보란 듯이, 가 아니라 그냥 자체적으로 힘이 샘솟았다. 어떤 여자들은 사랑의 상처에 몇 년 씩 헤매거나 다시는 사랑을 못할 것 같다며 비통해 하는데 난 왜 이 모양일까, 난 어쩌면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없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스스로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해석을 할 수 있는 내가 좋다. 왜냐하면 울고 화내기엔 인생은 너무 짧고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너무 짧기 때문이다. 관계에 대한 낙관성은 그 때 그 남자가 내게 몸소, 자신이 나를 놓고 가버림으로서, 역으로 남겨놓고 간 선물이었다.

/임경선(칼럼니스트)



내가 했던 선택들에 대해 항상 포장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런 선택을 했다고.
과거의 선택들에 대해 아무리 변명해도 그것들은 그 당시 마음에 품고 있던 이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를 의식해가며 과거의 선택들을 그럴 듯하게 포장한다.

그 선택의 이유가 당신이었어요, 라고 말 할 기회는 애석하게도 없었다.
그런 기회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쯤 냉소적인 사람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딱히 더 냉소적인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깨달아도 별 차이 없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거나 혹은 원래부터 냉소적이었거나.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누군가가 나타나고, 누군가는 사라지고.
그렇게 수많은 선택을 했고 지금의 내가 있다.

며칠 밤을 앓아가며 누군가를 떠올리고 선택을 한다.
선택의 결과들이 내 성장의 흔적으로 남은반면 그 선택의 이유였던 이들은 지금 내 곁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내가 했던 선택들의 전부였던, 지금은 아주 작은 흔적으로 남은 그들이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일까.
과거에 전부였던 그들과 마주한다면 그 흔적들이 조금은 도드라질까.

거울을 보는게 싫다.
또 다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거울을 바라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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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면 모자를 쓰자 - 이문재

아로새기다 2012.08.2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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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 김어준

아로새기다 2011.12.30 15:07
 
고등학생이 돼서야 알았다. 다른 집에선 계란 프라이를 그렇게 해서 먹는다는 것을. 어느 날 친구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반찬으로 계란 프라이가 나왔다. 밥상머리에 앉은 사람의 수만큼 계란도 딱 세 개만 프라이되어 나온 것이다. 순간 ‘장난하나?’ 생각했다. 속으로 어이없어 하며 옆 친구에게 한마디 따지려는 순간, 환하게 웃으며 젓가락을 놀리는 친구의 옆모습을 보고 깨닫고 말았다. 남들은 그렇게 먹는다는 것을.

그때까지도 난 다른 집들도 계란 프라이를 했다 하면, 4인 가족 기준으로 한 판씩은 해서 먹는 줄 알았다. 우리엄마는 손이 그렇게 컸다. 과자는 봉지가 아니라 박스 째로 사왔고, 콜라는 병콜라가 아니라 PET병 박스였으며, 삼계탕을 했다 하면 노란 찜통-그렇다, 냄비가 아니라 찜통이다-에 한꺼번에 닭을 열댓 마리는 삶아 식구들이 먹고, 친구들까지 불러 먹이고, 저녁에 동네 순찰을 도는 방범들까지 불러 먹이곤 했다.

엄마는 또 힘이 장사였다. 하룻밤 자고 나면 온 집안의 가구들이 완전 재배치되어 있는 일이 다반사였다. 가구 배치가 지겹거나 기분 전환이 필요하면 그 즉시 결정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가구를 옮기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잦으니 작은 책상이나 액자 따위를 살짝 옮겼나보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사할 때나 옮기는 장롱이나 침대 같은 가구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끌려 다녔으니까. 오줌이 마려워 부스스 일어났다가, 목에 수건을 두르고 목장갑을 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커다란 가구를 혼자 옮기고 있는 ‘잠옷바람의 아줌마가 연출하는 어스름한 새벽녘 퍼포먼스’의 기괴함은 목격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새벽 세 시 느닷없이 깨어진 후 팬티만 입은 채 장롱 한 면을 보듬어 안고 한 달 전 떠나왔던 바로 그 자리로 장롱을 네 번째 원상복귀 시킬 때 겪는 반수면 상태에서의 황당함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재수를 하고도 대학에 떨어진 후 난생 처음 화장실에 앉아 문을 걸어 잠그고 눈물을 훔치고 있을 때, 화장실 문짝을 아예 뜯어내고 들어온 것도 우리엄마가 아니었다면 엄두도 못낼 파워풀한 액션이었다. 대학에 두 번씩이나 낙방하고 인생에 실패한 것처럼 좌절하여 화장실로 도피한 아들, 그 아들에게 할 말이 있자엄마는 문짝을 부순 것이다. 문짝 부수는 아버지는 봤어도엄마가 그랬다는 말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듣지 못했다.

물리적 힘만이 아니었다. 한쪽 집안이 기운다며 결혼을 반대하는 친척 어른들을 향해 돈 때문에 사람 가슴에 못을 박으면 천벌을 받는다며 가족회의를 박차며 일어나던엄마, 그렇게 언제나 당차고 씩씩하고 강철 같던엄마가, 보육원에서 다섯 살짜리 소란이를 데려와 결혼까지 시킬 거라고 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다. 담당 의사는 깨어나도 식물인간이 될 거라 했지만엄마는 그나마 반신마비에 언어장애자가 됐다.

아들은 이제 삼십 중반을 넘어섰고 마주 앉아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할 만큼 철도 들었는데, 정작엄마는 말을 못한다. 단 한 번도 성적표 보자는 말을 하지 않았고 단 한 번도 뭘 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화장실 문짝을 뜯고 들어와서는 다음 번에 잘하면 된다는 위로 대신에, 그깟 대학이 뭔데 여기서 울고 있냐고, 내가 너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며 내 가슴을 후려쳤던엄마, 사실은 바로 그런엄마덕분에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그 어떤 종류의 콤플렉스로부터도 자유롭게 사는 오늘의 내가 있음을 문득 문득 깨닫는 나이가 되었는데, 이제엄마는 말을 못한다.

우리 가족들 중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병원으로 찾아와,엄마의 휠체어 앞에 엎드려 서럽게 울고 가는 걸 보고 있노라면,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사신 거냐' 고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데 말이다.

글 : 김어준 (인터넷신문 딴지일보 총수)


*이 글은 월간 <샘터>와 아름다운 재단이 함께하는 '나눔의 글잇기' 연작으로 월간 <샘터> 2003년 2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글쓴이 김어준 님은 아름다운 재단이 벌이고 있는 '아름다운 1% 나눔' 캠페인에 참여해 이 글의 원고료 전액을 아름다운재단 공익출판기금에 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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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포도는 시다 - 황경신

아로새기다 2011.11.29 19:42

#1

“이런 건 홍합이라고 부를 수도 없지.”

그날의 술자리에서 J선배가 말했다.

“그럼 홍합이라 부를 수 있는 건 어디 가면 볼 수 있어요?” 내 질문에, “서해의 만재도라는 섬에 가면 감동적인 홍합을 만날 수 있어”라고 그는 대답했다.

즉석에서 여행계획이 세워졌다. K와 Y가 동행하겠다고 하고, 그렇다면 설날 전에 다녀오자고 날짜를 잡았다.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떠나기로 약속한 날이 일주일쯤 남았을 때였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여행을 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J선배에게 전해 듣고, K와 Y와 나는 쉽게 만재도와 홍합을 포기했다. 안내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고, 서울에서 목포까지 다섯 시간, 목포에서 배타고 다섯 시간이라는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내기가 너무 힘들 것 같다는 것이 숨겨진 이유였다. 여행의 행선지가 바뀌고, 일정도 짧아졌다. 그 길이 너무 멀어 웬만한 마음먹기로는 갈 수 없다는 그 섬을, 처음부터 웬만한 마음으로 가려고 했던 것이 잘못이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J선배가 동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곳에 가지 못할 이유는 없다. 모르는 길이야 물어 가면 될 테고, 여행이란 원래 예기치 않는 일들을 만나는 기쁨으로 가는 것일 텐데. 다만 그 먼 길이 두렵고 불편했을 것이다. 뻔히 예상되는 고생을 무릅쓸 만큼 만재도가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다. 고생하기 싫어서 만재도의 매력을 격하시킨 것이다.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고 좋은 것만 얻으려는 욕심 탓이다.

만재도와 홍합, 그 포도는 시지 않을 확률이 높다.


#2

“우리도 그 복권 한 번 사볼까, 터지면 대박인데”라는 말을 시작으로 하여, 복권에 대한 화제는 끝이 없다. 1등에 당첨될 확률은 번개에 맞아 죽을 확률과 비슷하다더라, 지난번에는 어디에 사는 누가 당첨되었다더라, 그 사람은 그 돈 갖고 뭘 했을까, 등등에서 시작하여 내가 당첨되면, 네가 당첨되면, 이렇게 되면, 저렇게 되면, 상상에 대문짝만한 날개를 달았다.

“뭐? 이번 주는 50억이라고? 그럼 난 말이야… 우선 좋은 곳에 제대로 만들어진 건물을 하나 사서, 지하에는 멋진 공연장을 하나 만들고, 1층은 무료급식소를 차릴까. 2층에는 PAPER 사무실을 만들어야겠지? 분위기 좋은 카페도 하나 있으면 좋을 텐데… 에이, 50억도 모자라겠다.”

내 돈 내고 즉석복권 한 번 사본 적 없는 주제에, 드디어 50억도 작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데 말야, 그렇게 거액의 복권에 당첨되면 좋기만 할까?”

“그렇진 않겠지. 주변에서 얼마나 난리겠어.”

“당분간은 외국 나가 살아야 할지도 몰라.”

“말도 안 통하고 아는 사람도 없는 데서 고생할 거야.”

“주위 사람들도 점점 믿지 못하게 될 거야.”

“누가 사랑한다고 말해도 나를 사랑하는 건지 내 돈을 사랑하는 건지 어떻게 알겠어.”

“불행해질 거야. 인생 이상하게 꼬일 거야.”

결국 그렇게 결론이 난다. 복권, 그 포도는 실 가능성이 높다.


#3

“그때 그렇게 헤어진 거, 잘 됐지.”

그를 사랑하고 헤어진 날로부터 손가락 열 개를 훌쩍 넘긴 햇수가 지난 후, 나는 말한다. ‘사랑이 이루어진다’라는 말은 ‘왕자와 공주는 결혼하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와 같은 말이라고 생각하던 나이에 그를 만났으나, 이제 ‘우리가 결혼을 했다면 지금까지 그 때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는 나이가 되었다. 우리 그렇게 아쉽게 헤어진 탓에, 그 사랑 오래오래 마음속에 예쁘게 남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은 내 마음, 아주 거짓은 아니다.

사랑, 그 포도는 시지 않을 수도 있고 실 수도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조금 더 현명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나이를 먹을수록, 먹어보지도 않고 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포도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포도는 귀찮아서, 어떤 포도는 번거로워서, 어떤 포도는 무언가를 희생하고 싶지 않아서, 어떤 포도는 용기가 없어서 포기한다. 모든 사람들이 포기하는 포도를 나 혼자 기를 쓰고 따먹겠다는 게 영 무안해서, 혼자 그러다가는 따돌림당할 것 같아서 포기한다. 그렇게 하여 내 인생에 맛보지 못한 포도들이 늘어간다. 그때 그 포도, 생각이 나도 다시 돌아갈 수가 없으니 애써 잊는다.

결국 내게 남은 것은 시지 않은, 달콤한 포도들인가. 아니다. 그것은 내 손닿는 곳에 있는, 쉽게 딸 수 있는 안전한 포도들이다. 그 포도들이 무미건조해도, 어차피 저 위에 있는 포도는 실 텐데 뭐, 하고 스스로를 타이른다. 비슷비슷한 맛의 포도들만 자라고 있는 나의 포도밭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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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칼럼, 버티는 것에 대하여

아로새기다 2011.11.21 20:53
 
  소위 20대 문제라는 화두가 대충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로 귀결되며 흐릿해지는 양상인데, 이 문제에 대해 떠올릴 때마다 답답해진다. 세대 담론이 애초 당연히 이행되어야 마땅했을 계급적인 문제의식으로 발전하기는 커녕, 기성 세대들에 의해 ‘청춘’을 둘러싼 감상적 소회로 귀결되고 그 안에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애틋하고 축축한 말은 ‘외부 환경에 의해 강요된 아픈 시기를 어떻게 견뎌내야 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이고 딱딱한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이 겸연쩍게 만들어버린다.

  자, 여기 이제 막 20대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여전히 그 관성 위에서 절룩거리고 있는 한 남자를 보자. 그의 이름은 록키 발보아다. 통장에 잔고라고는 고작 106달러 뿐이었던 30세의 가난한 배우 실베스타 스탤론이 3일만에 써내려간 <록키>의 주인공. 스탤론 자신과 똑같은 나이와 상황에 처한 남자다. 스탤론이 록키 발보아고 록키 발보아가 스탤론이었다. 배우 오디션에 찾아갔다가 여지없이 탈락하고 힘없이 발길을 돌리던 찰나, 스탤론은 희대의 제작자 어윈 윙클러와 로버트 챠도프를 발견하고 용기를 내 말을 걸었다. “저, 제가 시나리오를 좀 쓰는데 요즘 복싱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써둔 게 있거든요. 한 번 봐주시겠어요?” 그리고 스탤론의 인생은 영영 바뀌었다.

  이 영화 속 두 개의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평소 록키를 ‘건달’이라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체육관장 미키가, 챔피언 아폴로와의 결전을 앞둔 록키에게 매니저가 되어주겠다며 찾아온다. 그러면서 자신이 젊었을 때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고 얼마나 훌륭한 복서가 되었는지 주구장창 늘어놓는다. 록키는 폭발한다. “엄청 오래 걸렸군요. 내 집까지 오는 데 무려 10년이나 걸렸어요. 10년. 왜요, 내 집이 싫어서요? 좁아서요? 냄새가 나요? 그렇죠, 냄새가 나죠! 당신은 전성기를 얘기하는데, 그럼 내 전성기는 어디 있어요? 당신은 그거라도 있지, 난 아무것도 없어! 난 벌써 서른 살이야! 경기를 해봤자 엄청나게 얻어맞겠지, 다리도 팔도 이젠 전처럼 말을 안 들어! 이제 와서 날 도와주겠다고? 여기 들어오고 싶어요? 그럼 들어와요! 냄새가 지독해! 젠장 온 집안이 냄새 투성이야! 날 도와줘 보라고요!” 그 좁고 더러운 방은 스탤론이 시나리오를 썼던, 실제 자기 단칸방이었다(제작비가 모자랐다. 영화 내내 록키가 입고 다니는 옷이나 모자도 스탤론이 평소 쓰던 것들이다). 그는 20대 내내 단 한 번도 찾아와주지 않았던 그 ‘기회’라는 것에 대해, 록키의 입을 빌어 분노하고 있다.

  다음 장면. 챔피언 아폴로와의 시합 전날 밤이다. 록키는 벌벌 떨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보다 못한 그의 연인 애드리안이 시합을 만류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록키가 말한다. “시합에서 져도, 머리가 터져버려도 상관없어. 15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아무도 거기까지 가본 적이 없거든.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두 발로 서 있으면, 그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 될 거야.” 다음 날. 15라운드 마지막 종이 울렸을 때 록키 발보아는 두 발로 서 있었다. 시합 결과는 그의 판정패였다. 그러나 상관 없었다. 록키는 끝없이 흐느꼈고, 관중은 승자가 아닌 패자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록키의 마지막 대사가 흘러나온다. “애드리안, 내가 해냈어.”

  <록키>는 지난 세월을 꼰대들과 불화하며 답답하게 보낸 서른 살의 한 남자가 세상의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온전하게 증명해내는 이야기다. 그의 해답은 이기든 지든 끝까지 자기 힘으로 버티어내는데 있었다. 지난 2년 6개월 동안 이 칼럼을 쓰면서 언제나 록키 발보아 이야기로 끝을 맺고 싶었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모두들, 부디 끝까지 버티어내시길.

- 허지웅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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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첩장

아로새기다 2010.10.29 08:00




http://ozzyz.egloos.com/

GQ기자로 일하시던 시절부터 허지웅씨의 글을 좋아해서 블로그도 자주 찾아가는데,
결혼식 청첩장도 역시나 센스만점!
친분은 없지만 맘 같아서는 결혼식장에 무작정 찾아가서 축하해드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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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회] U-17 우승 포상금 논란, 누구를 비난할 것인가

아로새기다 2010.09.29 09:55

며칠이 지나도 이 여운은 가시질 않는다. U-17 여자 청소년 대표팀이 청소년 월드컵에서 역사적인 우승을 이룬 감동은 며칠이 지나도 여전하다. FIFA 주관 대회에서 한국의 첫 우승이라는 역사를 이룬 주인공들이 자랑스럽고 대견하기만하다. ‘국민 여동생’이라는 호칭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대회가 끝난 뒤 엉뚱한 곳으로 비난의 화살이 쏠리고 있어 몇 자 적어보려 한다. 우승에 대한 포상이 현격히 적고 제대로 된 대우가 아니라는 여론에 엉뚱한 대한축구협회와 여자축구연맹이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러한 여론은 여자축구연맹이 3천만 원을 이번 대회에 나선 선수들에게 주기로 하면서 더욱 번졌다.

여자축구연맹이 이번에 주기로 한 3천만 원으로 포상이 모두 마무리된다고 믿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대한축구협회는 아직 정확한 액수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선수들의 노고에 금전적인 혜택을 줄 계획이다. 아직 어린 나이의 선수들에게 ‘포상금’을 대신해 ‘장학금’이라는 명목으로 노고를 치하할 예정이다.

협회가 아직 얼마의 돈을 장학금 명목으로 선수들에게 나눠줄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U-20 여자월드컵 4강 주역들에게 2억 4,700만 원의 포상금이 지급된 것에 비추어 볼 때 비슷한 액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여자축구연맹이 3천만 원, 하나은행이 선수단 전원에게 1인당 300만원씩, 모두 7500만원의 장학금을 더 줄 계획이다. 나도 돈만 있다면 몇 푼이라도 주고 싶다. 아니면 소개팅이라도 한 번씩 시켜주고 싶다.



남자 성인 월드컵에 비하면 물론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원정 첫 월드컵 16강을 달성한 남자 성인 대표팀은 협회로부터 총 42억 5,000만 원의 포상금을 받았다. 박지성, 이청용 등 A등급을 받은 선수들은 1억 7,000만 원씩 받았고 허정무 감독은 3억 원을 받았다. 남녀 차별하느냐고 반문하기 딱 좋은 스토리다. 하지만 이런 소리는 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축구를 나처럼 글로 배운 사람도 이런 말은 안 한다.

남자 성인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르면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얼마나 받게 될까. 자그마치 900만 달러(약 104억 원)다. 이 중 포상금을 줬으니 당연히 그 금액이 많을 수밖에 없다. 협회가 남자 성인 대표팀을 통해 얻는 천문학적 수익을 따져본다면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협회는 중계권료와 스폰서 수입 등으로 남자 성인 대표팀이 거의 먹여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 이제 이번 U-17 여자 청소년 월드컵으로 돌아와 보자. 우승 상금이 얼마일까. 10억 원? 1억 원? 정답은 ‘0원’이다. 이 대회는 성적에 따른 상금이 없는 그야말로 ‘무일푼’ 대회다. 10억 원을 받았으면 적어도 절반인 5억 원은 포상금으로 썼겠지만 이 대회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없다. 출전만 해도 천문학적인 금액을 FIFA로부터 받는 남자 성인 대표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마찬가지로 상금 없는 대회에서 8강에 오른 남자 U-17 월드컵 대표팀과 U-20 월드컵 대표팀도 선수당 500만 원 씩 받은 바 있다.



그렇다면 ‘포상금’이건 ‘장학금’이건 협회가 선수들에게 지급할 돈은 어디서 나올까. 다 협회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다. 여기에 여자축구연맹이 지급하기로 한 3천만 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반문할 이들이 있겠지만 이 돈은 그러면 또 어디에서 나올까. 이 돈 역시 WK리그 챔피언결정전이 끝난 뒤 여분의 예산에 오규상 연맹 회장과 7명으로 구성된 부회장단이 십시일반 사비를 걷어 주기로 했다. 연맹은 지난 U-20 여자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이 4강에 오르며 선전할 때도 사비를 털어 3천만 원을 모았다.

나는 오히려 연맹의 이런 작은 정성이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어린 선수들이 장한 일을 해냈는데 아무리 연맹 사정이 어렵다고 해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면서 “선수 일인당 100~200만 원 밖에 돌아가지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그동안 고생한 보람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사비를 턴 이들을 오히려 더 긍정적으로 바라봐 줘야 하는 것 아닐까. 여자축구연맹은 대한축구협회 산하의 영세한 단체다.

우리가 만약 평소에 여자 축구에 관심을 갖고 응원했다면 관중 수익, 스폰서 수익 등으로 여자축구연맹은 재정이 풍족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포상금을 적게 배분하라는 여론 몰이가 있었다고 해도 이번 U-17 여자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의 주머니는 두둑해 졌을 것이다. 평소에 관심도 없었으면서 이제와 적은 포상금으로 누구를 비난할 수 있나. 이건 우리 얼굴에 침 뱉는 꼴이다.

물론 나 역시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우승을 차지한 이들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들이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다면 내가 칼럼이고 1인시위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할 것이다. 그녀들은 태극 마크를 달고 최선을 다했고 멋지게 한국 축구의 새 역사를 일궈낸 이들이다. 하지만 처한 상황을 살피지 않고 그저 많은 돈이 포상금으로 쓰여지길 바라는 건 억지일 뿐이다. 내 주머니에 만 원이 있는데 친구한테 10만 원을 꿔 줄 수 있나.



일부 언론에서는 16강에 오른 남자 성인 대표팀에게는 42억 원의 포상금을 주고 우승을 차지한 U-17 여자 청소년 월드컵 대표팀에게는 ‘장학금’ 형식으로 몇 푼 쥐어주지 않는 상황을 굉장히 자극적으로 비교하고 있다. 과연 대회의 규모와 참가금, 처한 상황 등이 현격히 다른 두 대회 대표팀을 비교하면서 성인과 청소년, 남성과 여성으로 몰아가는 건 무척 멍청하거나 치사한 방법이다. 여자 축구를 그렇게 위할 거면 그 시간에 차라리 WK리그 경기 기사를 써 달라.

네티즌들도 자극적인 비교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한다. 고등학교 3학년 조카와 유치원 조카가 똑같은 세뱃돈을 받는 게 정상적인 일인가. 내 주장과 논리에 동의할 수 없다면, 여자 청소년 대표 선수들이 훨씬 많은 돈을 받아야 한다면 방법은 하나다. 바로 당신의 계좌에서 직접 이번 U-17 여자 청소년 대표팀의 후원금을 송금하는 것이다. 자, 이래도 이번 포상금, 혹은 장학금 논란으로 욕을 먹어야 할 이가 있나.

남에게 “돈 쓰라”고 말하는 건 쉽다. 내 돈 나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정작 여자 축구를 위하는 건 이 논란에 일방적으로 누굴 비난하는 게 아니다. 포상금이건 장학금이건 몇 백만 원이 더 그녀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게 해결책이 아니다. 바로 이럴 시간에 우리가 여자 축구 경기장을 꽉 채우고 뜨거운 응원을 보내는 것이 그녀들을 위한 일이다. 모두들 이 사실을 아는가. 내일은 한국 여자 축구의 챔피언을 가리는 WK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이 열리는 날이다.

- 김현회 (footballavenue@nate.com)

원문주소
http://news.nate.com/view/20100929n03596


네이트에서 보게되었는데, 나도 오해하고 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기에 읽으면서 반성.
좋은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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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유통기한은 왜 3년일까?

아로새기다 2010.08.03 12:20





Q 왜 연애 유통기한은 3년일까요? 아무리 사랑에 빠져 죽을 것같이 좋다가도 3년이 되면 사랑이 식는 걸까요?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이 왜 3년이 되면 고비를 맞는 걸까요? 어떻게 하면 3년이라는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요? 
   

A 영원하지 않을 걸 알면서 하는 게 바로 사랑의 위대한 점이로다  

내가 미치거나 총 맞지 않고서야, 왜 이런 코너를 맡겠다고 홀라당 넘어갔는지 지금도 거 참,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주변에 총 갖고 다니는 사람은 없으니 분명 전자가 확실할 텐데, 그런 정신을 가지고 어떻게 남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을지…. 새삼 온 정신으로 돌아와 걱정만 하고 있는데, 세 살짜리 아들놈이 등 뒤로 조용히 다가와 파워레인저 엔진포스 총을 쏘고 도망갔다. 아아, 그래서 걱정은 단번에 사라져버렸다. 그건 그냥 총 맞은 거였구나, 총 맞은 거였어! 그렇게 두 팔 벌려 환호작약한 다음,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총 맞고 난 뒤, 쓰는 원고라는 점, 유념해주길 바란다. 거 뭐, 무서운 건 하나도 없다. 자, 이제 시작해보자.


하나. 연애의 유통기한은 왜 3년일까요, 묻는 당신은, 안타깝지만 이 땅의 중등교육의 또다른 피해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먼저 해본다. 3년이 지나면 왠지 졸업해야 할 거 같고, 그다음엔 다른 애인으로 진학해야 할 거 같고, 학용품도 새로 장만해야 할 거 같고, 뭐 그렇고 그런 모범생들 있지 않은가. 알게 모르게 주위엔 그런 모범생이 제법 많다. 50분 전화하고 10분 침묵하고, 50분 이야기하고 10분 섹스하고, 50분 술 마시고 10분 꺼이꺼이 울고. 연애를 학교 시스템에 맞춰, 똑같이 운용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다는 소리다. 3년에 맞춰 교과서를 다 떼고 나니, 이런, 이제 더 이상 배울 것도, 궁금한 것도 없구나, 그러면 남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애인을 ‘수학의 정석’화시킨 전형적인 사례. 그런 당신에게 말해줄 수 있는 일화 하나. 
 
예전 고등학교에 다닐 때, 동네에 노는 형님이 한 분 계셨다. 이 형님은 학교를 무슨 유엔안보리 이사회 참석하듯 띄엄띄엄 다니셨는데, 그래서 당연하게도 1년 더 ‘꿇게’ 되신, 학교 시스템의 이단아 같은 존재였다. 한데, 이 형님의 마지막 학교생활 1년은, 다른 해와는 다르게 아주 열심이었다. 체육대회에도 열심, 보충수업이나 ‘야자’에도 열심(안타깝게도 성적은 그리 좋아지지 않았다), 반 미팅에도 열심. 해서, 어느 토요일 하굣길이던가, 내가 슬쩍 물어본 적이 있었다. 형, 요새 왜 이렇게 학교생활에 열심이세요? 그러자, 동네 노는 형님은, 위로는 천문이요, 아래로는 지리를 꿰뚫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정들어서. 당시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이 형님이 정말 병원에 입원해야 되는 건 아닐까, 고민했지만, 이젠 어렴풋이나마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정든다는 것의 참말로 큰 의미 말이다.

 
둘째. 동네 노는 형님이 해준 말과도 연결되는 이야기이지만, 사랑에 빠져 죽을 거같이 좋은 시기가 3년 이상 지속되면 미안한 말이지만 그러단 정말 죽고 만다. 심장마비나 고혈압 같은 것이 올 확률이 높다. 내 경운 분명 그랬다. 살기 위해서라도 사랑은 좀 식을 필요가 있다. 사랑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차이는 좀 있겠지만, 우리가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지속시킬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6개월 남짓이 전부일 것이다. 그다음은 그저 리얼리즘의 시대일 뿐이다.(내가 알고 있는 한 선생님은, 이 리얼리즘의 시대가 수십년 이어지고 나면 휴머니즘의 시대가 온다고 했다.) 방귀도 트고, 트림도 트고, 쩝쩝 음식 먹는 소리도 갑자기 요란해지는 리얼리즘의 시대 말이다.(그 모든 것이 사실은 모두 살아보겠다고, 이러단 만성 속쓰림에 암까지 생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의 발로 때문에 튀어나온 본능들일 것이다.) 그 시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관계는 쫑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랑은 꼭 ‘좋아 죽을 것 같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 사랑은 영원할 것만 같아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도 사랑하는 게, 그게 바로 사랑의 위대한 점이라는 것, 그걸 좀 생각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사랑에는 당연히 유통기한이라는 게 있다. 하지만 그걸 빤히 알면서도 가는 게 핵심이다. 우리가 무슨 이마트나 홈플러스냐, 새삼 유통기한 따위에 놀라게. 
 

정리 차원에서 한마디만 더 하자. 그 옛날 프랑스에서 7월혁명이 일어났을 때, 시민들이 가장 처음 공격한 곳은 시내 곳곳에 세워져 있던 시계탑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그 당시 시민들은 시간에 대해, 그러니까 근대에 들어서부터 계량화되고 수치화된 시간에 대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 우리가 3년이라는 사랑의 유통기한에 대해서 말할 때, 이것 역시 그냥 넘어갈 순 없는 문제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역시 사랑을 계량화하고 수치화하는 데 익숙해져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점 말이다. 예전 우리 할머니는 내가 할아버지에 대해서 물을 적마다 늘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그 양반하고 내가 오래 살긴 오래 살았지, 뭐. 따져 보니 그 세월이 40년이었다. 너무 날짜 따지고, 그러면서 다시 날짜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지는 말자. 때론 한 달 만난 사랑이 평생을 가는 경우도 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우리 사랑이, 이마트나 홈플러스와는 다른 점이다.

- 소설가 이기호

한겨레 [매거진 esc] 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오랜만에 한겨레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소설가 이기호가 상담코너를 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상담조차도 그의 소설처럼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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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에 대해서

아로새기다 2010.07.07 23:40

  자살이 문제라고 말한다. 자살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자살은 무책임한 도피처라고 말한다. 자살은 종교적인 이유로 용납될 수 없다고 말한다. 너 지옥 불구덩이에서 혀 뽑히고 싶니. 과연 누군가의 자살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안긴다. 해명되지 않은 자살일수록 더욱 그렇다. 남은 자들의 슬픔은 속으로 곪고 밖으로 흐른다.
  그러나 나는 자살마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생명의 여탈을 스스로 온전히 지배할 권리는 당연히 개인에게 속해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자살이야말로 나 자신을 너무나 아끼고 귀히 여기기 때문에 다다를 수 있는 골목이다. 행복한 사람은 자살할 이유가 없다. 물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게 또한 자살이지만. 어쨌든 선택 가능한 단 한 가지 행복의 방법이 자살이었다면 그 역시 존중해줘야 하는 게 그(녀)와 기억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 아닐까.
  안락사 문제를 포함해 자살 화두가 나올 때마다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는 사람들을 보면 삐딱한 마음이 먼저 든다. 그들이 정말 떠난 사람을 위해 그러는 것일까. 나는 그들 자신이 편하고 싶은 마음에 그러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정당함을 보호하기 위해 아무개의 절박한 선택을 미련한 무책임으로 희석시킨다. 이런 사례는 굳이 자살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주위에 무수히 많다. 한 줌의 이론과 결백과 마음의 평안을 위해, 사람들은 실존하고 있는 누군가의 처연한 현실을 향해 너무 많은 침을 뱉는다.

 
- 허지웅 <프리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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