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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7

용서받지 못한 자 (The Unforgiven , 2005) 연상호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창'이나 임태규 감독의 '폭력의 씨앗' 같은 군대 관련 영화는 어쩔 수 없이 과하게 몰입하게 된다.군필자에게 군대는 삶에서 너무 큰 부분을 빼앗아버렸기 때문이다.2년이란 시간을 부조리한 시스템 안에서 보내는 건 여러모로 안 좋은 사회화의 경험이다. 군대에서 가장 많이 배우는 건 합리화다.거지 같지만 버티고, 버티다 보면 어느새 내가 증오하던 이들과 닮아있음을 발견하는 것.하지만 이런 시스템 안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하는 것. 윤종빈 감독은 데뷔장편에서부터 영화가 캐릭터싸움이라는 걸 확실하게 보여준다.매력적인 캐릭터들 덕분에 뻔할 수 있는 군대이야기에 신선함이 더해진다.비교적 신인 시절의 하정우를 보는 것도 '용서받지 못한 자'의 매력이다. 윤종빈 감독의 영화들은 매력.. 더보기
버닝 (BURNING , 2018)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단, '밀양'은 좋은 짜임새에 비해 감흥이 덜했다.'버닝'은 '밀양'만큼이나 내게 별 감흥을 못 준 작품이다.심지어 짜임새에 있어서도 의문 가는 부분이 많았다. 일단 이 영화가 이창동 감독이 아닌 신인감독의 영화였어도 과연 '버닝'이 지금만큼 좋은 평을 받았을지 의문이다.완벽에 가까운 그의 전작들의 여운을 머금고 봤기에 그나마 이 영화에 호의적인 게 아닌가 싶다. 가장 놀란 부분이 이 영화가 청춘에 대해 도식적으로 다룬 부분이다.이창동 감독의 영화에서 도식적인 설정들을 본다는 게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그가 청춘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어도 이런 도식적인 설정으로 극을 전개할 거라고는 예상 못했다.예상가능한 지점들, 윌리엄포크너나 위대한개츠비 등 인용된 텍스트의 작위성, 캐릭.. 더보기
화양연화 (花樣年華 , In The Mood For Love , 2000) 왕가위 영화를 처음 본 게 거의 10년 전이다.왕가위에 빠져서 거의 모든 영화를 다 봤다.데뷔작인 '열혈남아'부터 2004년에 나온 '2046'까지 단숨에 봤기에 어쩌면 작품마다 푹 빠져있을 시간은 부족했을지도 모른다.그래서 그의 작품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화양연화'는 왕가위 감독의 최고작으로 알려져있다.내게는 그리 큰 감흥이 없어서 내가 이상한가 싶었다. 10년이 지나 다시 본 '화양연화'는 거의 새로운 영화다.내가 왜곡해서 기억한 장면도 있었고,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그렇다고 해서 단숨에 걸작으로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다.여전히 내겐 '중경삼림'의 감성이 더 좋다. 장만옥이 너무 아름다워서 감탄했다.양조위는 러닝셔츠를 입었을 때 가장 멋진 사람 중 하나다.장만옥의 다양한 의상을 보는 것만.. 더보기
일대종사 (一代宗師 , The Grandmaster , 2013) 사랑하는 이를 오랜만에 만난다면 단숨에 달려가게 될까.막상 그 순간이 되니 오히려 주춤하게 된다.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가 내게 그랬으니까.내게 영화의 첫사랑과 같은 그의 신작을 오랜만에 보는 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일이었다. '일대종사'를 보면서 가슴 벅찼던 이유는 내가 보고 싶었던 왕가위의 지점들이 영화 안에 담겨있었다는 거다.'화양연화'의 변주로 보이는 사랑의 무드, 이미지로 만드는 서사, 서정을 자아내는 화면의 디테일, 촬영과 음악까지 그동안 그의 전작에서 곱씹던 지점을 신작을 통해 봐서 마음이 좋아졋다. 무공을 지키고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지만 결국 '지킨다'는 것의 가치에 대한 영화다.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가치 있는 것을 지키려 하고, '일대종사'에서는 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