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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5

남한산성 (南漢山城 , The Fortress , 2017) 담백하고 건조해서 좋았다.특히 대사.말로 만들어내는 텐션이 이 정도인 작품은 오랜만이다.물론 이것이 김훈의 원작 덕분인지 황동혁 감독의 재능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역사를 충실하게 그리되, 감정적으로 너무 극대화시키지 않았다.김훈의 원작이 워낙 건조할 테니 영화의 톤은 예상됐고, 영리한 선택으로 느껴진다.삼전도의 굴욕도 머리에 피가 나거나 하지 않고 담백하게 그려냈다. 김상헌과 최명길이 서로 인정하면서 대립하는 것이 참 이상적으로 보인다.최명길은 대의는 삶 이후의 것이고, 김상헌은 대의가 삶을 지탱한다고 믿는다.각자의 신념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멋졌다. 김상헌이 내내 강직하게 자기 신념을 말하지만 유일하게 거짓을 말하는 장면은 어린 아이인 나루에게 민들레가 피면 돌아온다고 하는 장면이다.대의를 위한.. 더보기
택시운전사 (A Taxi Driver , 2017) 장훈 감독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특이점이 전혀 없다.영화적으로 안전한 선택들, 클리셰의 연속이다. 영화가 주는 감동은 전적으로 소재의 몫이다.광주민주화운동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밖에 없는 소재다.그 소재에 대해 안전한 선택을 했다. 다루는 것 자체로도 힘이 되는 소재가 있다.그러한 소재의 영화는 많을수록 좋다.좋은 소재를 좋은 연출로 만드는 영화가 늘어나야 하니까. 검열의 시대를 지나느라 말하지 못한 영화들이 많다.앞으로라도 이런 영화가 많아지길 바란다.다만 영화적으로는 좀 더 도전적이기를 바라게 된다.다만 임상수 감독의 '그때그사람들'이나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처럼 근현대사를 다룬다면 그에 대해 아예 도전적이거나 밀도 있게 시도해보는 영화를 기대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더보기
베이비 드라이버 (Baby Driver , 2017) 가장 좋아하는 감독을 물었을 때 나올 말이 정말 많지만, 에드가라이트도 그 중 한 명이다.그만큼 자기 스타일이 뚜렷한 감독도 드물다.'뜨거운 녀석들'과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좋아하는데, 특히 사회비판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내는 그의 방식이 좋았다.고어성향조차도 영화의 서사 안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것은 리듬의 문제이고 에드가라이트는 리듬을 정말 잘 아는 감독이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리듬의 영화다.카체이싱 혹은 케이퍼 무비, 성장드라마라고 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하다.이전까지 느낀 에드가라이트의 장점인 리듬을 고스란히 유지하되 장르적으로는 새로운 시도를 해서 흥미로웠다.분노의 질주를 동력으로 삼아 달리는 라라랜드 같다는 설명은 좀 거친 요약이 될 것이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지만 오히려 친절한 설명으.. 더보기
밤의 해변에서 혼자 (On the Beach at Night Alone , 2016) 홍상수 영화를 본 지 꽤 되었다.'해변의 여인'부터 시작해서 그 이후의 영화들을 봤고, 데뷔작을 보고 감탄했고,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내게 홍상수 3기 같은 느낌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태껏 본 홍상수 작품 중 가장 실망스러웠다.홍상수 영화를 보는 재미가 이 영화에서는 찾기 힘들다.일단 그의 방어적인 태도, 변명에 가까운 말들로 인해 생긴 작위성이 그 이유라고 생각된다. 특히 '시간'에 대한 은유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을 노골적으로 쓴 부분은 잉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과 너무 흡사했다.마치 시간 위를 부유하듯 사는 여인이 결국 다시 시간으로 복귀해서 느끼는 성장통.이렇게 간단하게 요약되는 홍상수의 영화가 처음이고, 그래서 별로였다.홍상수는 요약되지 않지만 우리 일상에서 접근가능하기에 매력적이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