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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6

9 (9와 숫자들) - 방공호 들어와요 어서 들어와요 내가 만든 작은 세상으로 졸린 곰도 길을 잃은 다람쥐도 어림없죠 그대밖에는 들어와요 들어와요 창이 없어도 나는 빛을 볼 수 있어 들어와요 어서 들어와요 내 마지막 온기는 그대 것이니까 나는 깨어있을 거예요 매일 밤 그대 곤히 잠들 때까지 봄이 오면 함께 떠나요 모든 슬픔 여기 가둬두고서 들어봐요 귀 기울여 봐요 내가 지은 그대 위한 노래 밤 짐승도 약이 오른 아기 새도 소용없죠 그대 앞에선 내일은 더 찬 바람이 분대요 철새들은 어제 출발했어요 극명하던 푸르름과 시들음의 차이도 하얀 눈 속에선 의미를 잃어가네요 들어와요 들어와요 초라하지만 여기만은 안전해요 들어와요 어서 들어와요 내 마지막 향기는 그대 향해 있으니 나는 깨어있을 거예요 매일 밤 그대 곤히 잠들 때까지 봄이 오면 함께.. 더보기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The Revenant , 2015) 수염이 빨리 자란다. 미친듯한 속도로 자라기에 매일 면도를 한다. 매일 조금씩 얼굴에 상처가 난다. 정말 면도를 하고 싶지 않다. 쉬는 날에는 면도를 안 하고 집에 있는 게 좋다. 만약 면도를 했는데 갑자기 약속이 취소가 되면, 면도한 게 아까워서라도 나가야 한다. 내 피부에 상처를 내면서 면도까지 했는데 집에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어쨌거나 면도를 했고, 약속이 취소됐고, 가까운 극장들 상영시간표를 확인하고 대한극장에 갔다. '레버넌트'를 보자고 결정하고 걱정이 됐다. 러닝타임이 거의 3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봤던 '헤이트풀8'는 자극적임에도 긴 러닝타임에도 힘들었고, 이냐리투 감독의 전작인 '버드맨'보다는 정적일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걱정과 달리 러닝타임 내내 졸기는 커녕 집중할 수.. 더보기
질투 (La jalousie, Jealousy, 2013) 오랜만에 국립현대미술관에 갔다. 주로 미술전보다는 영상전을 보러 간다. 이번에 필립가렐 영화들을 상영해줘서 갔다. 회사에서 영어이름을 지어오라고 해서, '필립'이란 이름을 떠올렸다. 필립가렐의 영화를 본 적 없지만, 주변에 필립가렐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기도 했고. 결국 다른 이름을 선택하긴 했지만, 최근에 필립이란 이름에 대해 생각한 시간이 많았다. 미술관 가는 길에 백수린의 단편 '여름의 정오'를 읽었다. 전적으로 내 취향인 소설은 아니었지만, 몇몇 장면은 매혹적이었다. 오는 길에 봤던 소설 때문이었을까. 필립가렐의 '질투'를 통해 내가 보고 싶은 장면들을 정해놓고 간 것이었을까. 결론적으로 '질투'는 내게 썩 매혹적이지 않았다. 프랑스예술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안 좋은 편견들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 .. 더보기
언니네 이발관 - 혼자 추는 춤 왜 이따위니 인생이 그지 그래서 뭐 난 행복해 난 아무것도 아냐 원래 의미 없이 숨쉴 뿐이야 나는 매일 춤을 추지 혼자 그래서 뭐 난 괜찮아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그저 하루 하루 견딜 뿐이야 하루에도 몇번씩 난 꿈을 꾸지 여기 아닌 어딘가에 있는 꿈을 이렇게 춤을 추면서 거울을 보며 혼자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다른 나를 꿈꾸며 왜 이따위니 세상이 그지 내가 살아 가는 이곳엔 슬픈 일이 너무 많지 의미 없이 흘러 가 버린 세월아 사람들은 외로움에 지쳐 있다 누구도 누굴 이해하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춤을 추면서 외로워 몸을 흔들며 서로를 그리워하며 아무도 몰래 혼자서 여기 아닌 곳은 어디라도 난 예 작은 희망들이 살아 있는 곳 예 슬픈 사연들이 더는 없는 곳 예 난 아무것도 아냐 원래 그래서 뭐 난 행복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