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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덕혜옹주 (The Last Princess , 2016)

 

허진호 감독의 초기작을 좋아한다.

'봄날은 간다'와 '8월의 크리스마스'는 합쳐서 10번도 넘게 보았다.

학생 때는 이해가 안 되어서 당위성을 가지고 봤고, 지금은 문득문득 생각나서 보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허진호 감독이 타협하기 시작했다고 느껴졌고, 타협은 과잉을 부른다고 생각한다.

그가 타협했다고 느껴지는 영화에서부터 그의 작품에 별 애정이 안 갔다.


'덕혜옹주'도 내게는 썩 매혹적이지 못했다.

영화 중반에 총상 당한 박해일을 손예진이 손을 비벼서 자기 채온으로 치유하려하는 그런 장면이 허진호 감독으로부터 보고 싶은 장면이다.

표현은 최대한 절제하지만 숨길 수 없는 감정이 묻어나는 허진호 감독의 감성이 다시 보고 싶다.


서사에 있어서도 역사의식과 로맨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느라 집중하기가 힘들다.

보편의 상황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감독인데, 특별한 상황에 대한 강박 같은 것이 보여서 불편했다.


손예진은 '비밀은 없다'에 이어서 2016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고, 라미란은 무슨 역할을 해도 맡길 수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박해일이 선한 역할보다 악한 역할을 하는 모습을 더 보고 싶어졌다.

반대로 손예진은 내내 웃는 행복한 배역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무엇보다 가장 보고 싶은 모습은 예전의 감성으로 돌아갈 허진호 감독의 작품이다.

'덕혜옹주' 안에서도 반짝였던 사랑의 순간들이 있다.

부디 그 장면들의 결이 진하게 묻어나는 영화가 그의 차기작이기를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