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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이야기

취향

 

 

 

 

1. 취향

 

사람은 떠나고 취향은 남는다.

나는 나를 스쳐지나가는 이들의 취향이 섞여서 만들어진 존재이다.

나란 사람의 개성은 철저하게 타인의 흔적이다.

 

누군가의 음악, 누군가의 영화, 누군가의 문학이었던 것들이 이젠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것만 같다.

누군가의 흥얼거림에서, 누군가가 지나가며 했던 말에서, 누군가가 책상 위에 적은 메모에서 시작됐다.

이런 것들이 나란 사람의 뿌리다.

 

이젠 내 안에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자가증식을 해나간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내 뿌리의 끝이다.

내 취향의 시작점은 어디일까.

지금쯤 완전히 흡수되거나 부서진, 내 취향의 시작점은 언제일까.

 

임청하에서 왕가위로 넘어갔던, 문학반선생님에서 김영하로 넘어갔던, 김동률에서 칸예웨스트로 넘어갔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 사이의 간극은 때로는 너무 아늑하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밀접해서 민망하기도 하다.

 

나는 당신에게 어떤 음악으로, 어떤 영화로, 어떤 문학으로 기억될까.

나는 여전히 타인의 취향이 궁금한, 타인의 취향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다.

 

 

 

2. 이해

 

모든 것이 다 이해되는데 그냥 미운 사람.

이해가 하나도 안 되는데 그냥 좋은 사람.

 

논리를 무너뜨리는 사람이자 일관성을 파괴하고 예외를 만드는 사람.

모든 이해관계를 파괴시키는 그 속성을 매력이라고 부른다.

 

매력은 파괴적이다.

누구나 파괴적이고 예외적인 사람을 꿈꾸지 않나.

 

 

 

3. 역사

 

관심분야가 생기면 그 분야의 역사가 궁금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에게 흥미가 생기면 그 사람의 역사가 궁금해진다.

 

모르는 사람의 블로그에 방문하게 되는 경우는 흔하다.

영원히 누군지도 모를 사람의 블로그에 들어가서 그 사람의 글에 몰두하게 될 때가 있다.

스쳐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할 누군가의 글을 탐닉한다.

마치 역사공부하듯, 그 사람의 공개된 일기장을 보곤한다.

 

이런 식의 역사, 이런 식의 만남은 언제나 흥미롭다.

만나지 못할 것을 알기에 성립가능한 역사와 만남.

이러한 아이러니가 무너질 때 과연 어떤 관계가 발생할까.

 

 

 

4. 합체

 

2015년의 단편을 하나 뽑으라면 윤이형의 '루카'를 뽑을 것이다.

내가 아끼는 사람에게 선물해주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순간이 담긴 소설이다.

 

최근에 어떤 구절이 생각나서 '루카'를 다시 봤는데 내가 찾는 구절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궁금하세요 그렇습니다 이 새끼가 나한테 넣고 내가 이 새끼한테 넣습니다 안심하세요 내게도 취향이라는 게 있다 나는 당신들에겐 조금도 넣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구절을 찾고 있었다.

알고보니 그 전에 읽었던 황정은의 '뼈도둑'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그 순간부터 너는 나를 유일한 시민으로 갖는 사회가 되어야 했다. 네가 내 사회의 유일한 시민이었으니까. 너는 나를 온전해지게 하는 가족이었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단 한 명의 친구였으며, 주기적으로 긴장감을 불어넣어주는 지인이었고, 내가 살아보지 못한 좀더 나은 삶이었다. 나는 너라는 한 사람 속에서 그 모두를 찾고 구했다. 그 일이 잘못이었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윤이형의 '루카'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다.

 

두 소설이 합쳐졌을 때, 내게 더 명백하게 다가오는 정서가 있다.

둘 다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형식이 그럴뿐 좀 더 깊은 층위에 대해 말하는 소설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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